공리주의의 첫 번째 장점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대답을 얻는 데 있어 분명한 의사 결정 절차를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두 번째 장점은, 도덕은 인간을(그리고 다른 동물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또 규칙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을 돕고 이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상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공리주의는 1장에 나온 키티 제노비스의 사례를 다루는 데 있어서 분명하고 합당한 지침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경찰을 부르거나 그녀를 돕는 것이 그녀를 흔자 내버려 두는 것보다 더 많은 비공리를 산출하지 않는 한 그녀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죽은 백만장자의 200만 달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에 죽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수만 명의 기아 난민들이 굶어 죽는 것을 방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 경우에 죽은 사람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불합리하다. 양키스팀에 돈을 주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훨씬 많은 선을 실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공리주의의 세 번째 장점은 공리주의가 미래 세대의 문제를 다루는 데 특히 적합하다는 것이다 - 즉, 우리가 왜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인간의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 희소한 자연 자원을 보전해야 만 하는가? 수사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왜 미래 세대를 염려해야 하는가? 미래 세대가 도대체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6장에서 우리는 윤리적 이기주의가 미래 세대의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즉, 아직 존재하지도 않고 그래서 이기주의자에게 어떤 이득도 줄 수 없는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 자원을 보존함으로써, 이기주의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공리주의자들은 일반적 행복을 극대화하라는 하나의 최고의 의무를 진다. 미래 사람들의 삶의 질이 긍정적일 가망이 있는 한, 우리는 인류를 존속시키고, 인간을 낳고, 그들의 삶의 질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높이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해야 할 의무를 진다.
우리가 이 미래 사람들의 신원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들을 공리 계산을 위한 단순한 추상적 요소로 간주하고 공리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다. 파 핏은 이것을 다음과 같은 공리주의적 원리를 이용하여 설명한다. "현재 사는 사람들의 삶이 과거에 살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보다 더 나쁘다면 그것은 나쁜 것이다." 파 핏은 자신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령, 우리 세대가 "안전한 에너지 정책"과 "위험한 에너지 정책"'이라는 두 정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자. 위험한 에너지 정책은 우리에게는 안전할 듯하지만, 이를테면 지금부터 200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이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안전한 정책은 우리에게는 이익이 안 되지만, 미래 세대에게는 - 지금부터 200년 후에 살게 될 미래 세대 사람들에게는 - 안정적이고 안전할 듯하다. 선택은 불가피하고,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위험한 정책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해를 입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정책 결정이 다른 인과 연쇄를 발생시켜서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살아갈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이 누리는 인간적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삶의 질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만약 공리주의자들이 옳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좋은 세계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간소화해야 하며, 표토를 가능한 한 온전하게 보존하고, 위험에 처한 종을 보호하며,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줄이고, 야생지를 보존하며, 환경 일반에 미치는 전반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기술을 현명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공리주의는 수 세기 동안 존재해 왔으며, 그에 대한 비판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공리주의에 "철학적으로 깨끗한 건강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 전에 공리주의에 대한 일련의 표준적인 반론을 다룰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문제점들은 공리주의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he great ea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이라고 정식화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 정식 안에는 "최대"라는 두 개의 최상급 수식어가 두 개의 "최대'의 것.
즉 "행복"과 다수"를 수식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두 개의 변수를 가지게 되면, 두 변수가 갈등할 때마다 우리는 어떤 변수를 우선시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의 예를 살펴보자. 나는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먼 거리를 달린 사람에게 1,000달러의 상금을 주기로 약속한다. 세 사람이 참여했는데, 조는 31분에 5마일을, 존은 50분에 7마일을, 잭은 6분에 1마일을 달렸다. 누가 상금을 받아야 하는가? 존은 요구 조건 가운데 하나(가장 멀리 달리는 것)를 만족시켰고, 잭은 다른 하나의 조건(가장 빨리 달리는 것)을 충족시켰다.
공리주의는 이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대 다수가 행복을 누리도록 행복을 분배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그 경 오른쪽에 우리는 인구를 더 늘려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사회에서 가능한 최대 행복을 달성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그 경우에 우리는 일부 사람들의 행복 증가분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 손실분을 능가한다면, 일부 사람들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되는 것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의 총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아니면 최고의 평균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공리주의자들은 또한 우리가 특별히 누구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쾌락과 고통을 경험하는 모든 존재인가, 아니면 모든 인간 존재인가, 아니면 모든 이성적 존재인가? 어떤 기준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간 존재를 배제할 수도 있고, 다른 기준은 동물들을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리주의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복을 측정하며, 또 어떻게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개인 간에 비교할 것인지를 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고급 쾌락의 개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밀의 노력을 살펴보았으며, 또한 그의 해결책이 야기하는 부가적인 문제점들도 살펴보았다.
위의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도 실행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공리주의를 논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공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의 목표를 명료화하도록 무거운 부담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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