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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죽어가는 백만장자와 공리주의

by 형티처 2023. 1. 11.

당신이 죽어가는 백만장자와 함께 어떤 섬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죽어가면서 당신에게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나는 전 생애를 야구에 헌신해 왔고, 지난 50년 동안 뉴욕 양키스팀을 응원하면서 무한한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이제 죽음에 이르러 나는 나의 전 재산인 200만 달러를 양키스팀에 기부하고자 합니다." 그는 고액권이 든 상자를 가리키면서 "당신이 이 돈을 뉴욕으로 가져가서, 양 키스 구단주가 더 좋은 선수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그에게 전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안도와 감사의 미소를 지으며 당신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뉴욕으로 온 당신은 기아선상에 있는 동아프리카의 10만 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200만 달러를 모금한다는 내용의 신문 광고를 보게 된다. 그 광고는 당신이 좋아하는 자선단체인 세계 기아 구호 기구가 낸 것으로서, 당신은 이 기구의 진실성에 대해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200만 달러만 있다면, 굶주리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뿐만 아니라 지속이 가능한 경제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비료도 구입할 수 있다. 당신은 이 광고를 보고, 죽은 양키스 팬과 한 약속을 재고하기로 결심한다.


이의 경우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은 무엇인가? 몇 가지 전통적인 도덕원리들을 가지고 그것들이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자. 행동을 지도하는 원리로서 자주 제시되는 한가지 원리는 "너의 양심을 너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원리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쳤던 원리로서, 그것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메아리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여기서 도움이 될까?


아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일차적으로 양육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양육되었는가에 따라 그들의 양심도 서로 다르다. 양육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인 행위를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데 반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기를 밟은 것에 대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가령, 당신의 양심은 양키스팀에게 돈을 주라고 말하고, 나의 양심은 세계 기아 구호 기구에 돈을 주라고 말한다고 하자.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해 합의는 고사하고 논의조차 할 수 있을까? 양심이 최고의 원리라면, 우리는 논의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제시되는 또 다른 원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행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원리를 제시했다. 사랑은 확실히 훌륭한 가치이다. 사랑은 증오보다 가치 있는 태도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증오의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익 갈등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행동을 지도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만, 이성은 결혼처럼 눈을 뜨게 한다"고 말한다. 백만장자의 돈을 주어야 하는 경우에 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백만장자인가 아니면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인가? 사랑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우리가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적을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야만 하는가? 혹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또는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을 고의로 부당하게 해친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들도 아돌프 히틀러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나중에 따를 것이다. 사랑만으로는 어려운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행동을 지도하기 위해 자주 제시되는 세 번째 원리는 황금률이다. 즉. 남들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들에게 해 주어라'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의 고상한 경험 규칙인데, 경험 규칙은 단순하고 상식적인 상황에서 통용된다. 그러나 황금률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황금률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가령, 내가 헤비메탈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고 가정하자.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시끄러운 헤비메탈 곡을 연주해 주길 바라기 때문에, 나도 너를 위해 헤비메탈 곡을 연주해야 한다고 추론한다 - 비록 네가 그런 연주를 싫어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경우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황금률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한다. 네가 타인의 입장에 있다고 할 때, 남들이 너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들에게 해 주어라." 그러나 이것도 역시 문제가 있다. 만약 내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범이라면, 나는 교도소에서 풀려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교도소에서 풀려나야만 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내가 섹스에 굶주린 어떤 사람의 입장에 처하다면, 나는 주변의 가능한 아무나와 성관계를 가지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또는 다른 누군가가) 그 소원에 응해야만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황금률은 백만장자의 돈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양심, 사랑, 황금률은 모두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경험 규칙들이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도덕적 상황에서 대체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좀 더 복잡한 상황, 특히 정당한 이익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제한적이다.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좀 더 믿음직한 전략은 명확한 도덕 규칙들을 따르는 것이다. 가명, 당신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그와 달리 행동하는 것은 도둑질이기 때문에 백만장자의 돈을 양키스팀에게 주기로 결정한다면, 이 경우에 당신이 따르고 있는 원리는 "항상 약속을 지키라"이다. 원리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다. 모든 학습은 규칙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헤어에 따르면, "원리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앞에 대로부터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세대는 처음부터 새로 출발해야 할 것이고 스스로 배워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백만장자의 유산의 사례에서 약속 준수의 원리에 따라 행위를 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의무론이라 불리는 도덕 의론의 한 유형을 지지하고 있다. 1장에서, 우리는 의무론적 체계에서 가치의 중심은 행위나 행위 유형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즉, 행위 자체 안에 있는 어떤 특성이 본디 가치를 가진다. 예를 들어, 의무론자는 거짓말하는 바로 그 행위 안에서 본래 그른 것을 본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그 지역에 경제적 지불 능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세계 기아 구호 기구에 돈을 주기로 결정한다면, 여러분은 목적론적 윤리라 불리는 윤리 의론의 한 유형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목적론적 윤리는 결과주의 윤리라고 불린다. 우리는 또한 1장에서 이 체계에서는 가치의 중심이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예를 들어, 목적론자는 거짓말이 산출하는 결과에 따라 거짓말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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