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덕윤리와 윤리학 복습노트-행위중심윤리학과 덕윤리의 비교와 논쟁점
둘째, 행위 중심 윤리학은 부당한 신학적-법적 모델에 기초에 있다는 앤스콤의 비난에 대하여, 행위 중심 윤리학자들은 합리적 의사 결정 절차를 신학적 의사 결정 절차와 구별할 수 있다고 대응한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를 쓸데없이 따지도록 한다는 비난에 대하여, 그들은 일관된 체계를 만들어 내는 데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능한 우리의 행위에 대해 모든 지침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지침을 가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단지 성향만을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덕 중심 이론가들과는 달리 지침으로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셋째, 행위 중심 윤리학은 도덕성의 자연스러운 측면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하여, 행위 중심 윤리학자들은 우리가 도덕성을 완전히 덕으로 한정시키지 않고서도 덕을 존중할 수 있다고 대응한다. (선의와 같은) 덕을 가지는 것이 가지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 왜냐하면 덕을 베푸는 것은 우리에게 올바르게 행위를 할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에는 본디 가치가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옳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른 태도나 덕을 가지는 것에는 미학적 가치가 있다는 것, 게다가 그것들이 도덕적으로 수단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윤리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장을 시작하면서 제시한 예에서, 존이 굶주린 에티오피아인들에게 느끼는 슬픈 감정에는 만족스러운 어떤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심미적 만족이다. 매우 이타적인 사람들을 기술하는 언어들에 주목하라. 칸트의 말로 표현하면, 그들은 "스스로 밝게 빛나는 보석들"이다. 바로 이 은유는 (그들이 행하는 행위들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도덕적 가치를 넘어서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서 심미적으로 매력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넷째, 행위 중심 윤리학은 최소주의를 지지하며 인격의 발달을 무시한다는 노턴의 비판에 대하여, 행위 중심 윤리학자들은 도덕 최소주의가 최소한의 공통된 상식에 호소하기 때문에 쉽게 보편화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고 지적한다. 즉, 그것이 지시하는 금지 명령은 모든 합리적 행위자들에게 적용된다. 도덕 최소주의는 대부분의 삶을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음미 없이도 지속되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그것의 요구 사항은 대단히 겸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밀이 말하듯이, "우리의 모든 행위의 90%가 [도덕적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로부터 행해진다. 그리고 만약 의무의 규칙이 그러한 행위를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들은 옳게 행해진 것이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도덕적 의무의 영역에 있지 않고 허용 가능한 영역에 있다. 만약 우리가 도덕적 금지의 넓은 제한 구역으로부터 벗어나서 일탈하지만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인성과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 지대라는 관대한 부분이 주어져 있다. 도덕적 자유 지대는 때로는 신중한 것, 우리 자신의 이해 관심에 속하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도덕성은 공동체와 문화 속에서 발현된다는 매킨타이어의 비판에 대해서, 행위 중심 윤리학자들은 만약 이것이 전체적인 이야기로서 윤리적 상대주의를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덕은 전혀 객관적인 지위를 지니지 못한다고 대응한다. 반면에, 매킨타이어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주의의 맥락에서 인간을 위한 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때는 우리가 올바른 덕뿐만 아니라 일련의 핵심적인 원리의 체계를 끌어낼 수 있다.
덕 중심 윤리학자는 표준적 행위 중심 견해와 그것의 상응 이론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응 이론은 여전히 환원주의적이고, 덕을 이류 시민처럼 - 규칙을 주인으로 섬기는 하인처럼 - 취급하기 때문이다.
덕 이론가들은 덕 중심 윤리학이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환원주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규칙과 덕 중에서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양자 모두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참된 보완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규칙을 시행하는 어떤 예들은 덕 없이 행해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덕은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없을 때도 그 자체로 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다원주의 윤리학의 견해(다원적이 사이라는 말은 하나 이상을 의미한다)이다.
논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세 가지 표준적 행위 중심 견해의 논제를 떠 올려 보자. (1) 규칙의 행위 본성 논제, (2) 환원주의적 논제, (3) 도구적 가치 논제. 다원주의 윤리학자는 덕 이론가들처럼 덕을 이급 수준의 지위에서 상승시켜서 도덕 규칙과 같은 수준의 지위에 놓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거부해야 한다. 먼저 첫 번째 논제부터 살펴보자.
1. 규칙의 행위 본성 논제. 도덕 규칙은 사람들에게 어떤 행위를 행하거나 아니면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은 다양한 덕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행해질 수 있다.
다원주의 윤리학자들은 이 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한다.
첫째, 그것은 덕과 행위 사이의 밀접한 인과적 연계성을 무시한다. 필수적인 성향 없이 옳은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야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잘 나가는 메이저리그 투수에게서 홈런을 때린 것과 같다. 그는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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