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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

유신론자의 도덕적 이점 6가지

by 형티처 2023. 1. 11.

4강 3에서 이어짐

그 혹은 그녀는 완벽한 신을 기쁘게 하기를 원한다. 이슬람 테러 운동과 알카에다 운동의 창시자인 이집트 출신의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은 서구 사회, 특히 미국이 비도덕적이고 타락한, 쾌락적이고 이기적인 문명이라고 불평했다. 신의 사랑에 대한 강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부와 자유를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목적을 위해서 오용하게 된다.

다섯째, 만약 그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모든 사람은 평등한 가치를 지닌다. 유신론은 신이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가치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모두 그의 자식들이라면,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우리가 가족 구성원들을 평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대하듯이, 우리는 모두 가족이고 서로를 선의로 대해야만 한다. 사실, 현대의 세속적 도덕 체계와 정치 체계는 자주 개인의 평등한 가치를 정당화도 없이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신의 부성(parenthood)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천부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고하게 평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적자생존 과정의 산물인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평등한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도대체 가치라는 것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지성과 공리의 관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가 옳은 것 같다. 세상에는 광범위한 불평등이 있다. 그리고 왜 우월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열등한 유형의 사람들을 이용해서는 안되는가? 이것과 관련하여, 세속주의는 불평등 주의를 거부하는 데 있어 자신이 제거했던 종교적 자산의 이익에 빌붙는 것 같다.

요컨대, 만약 유신론이 거짓이라면, 모든 인간이 평등한 가치를 가지는지 혹은 도대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가 의심스럽게 된다. 그리고 왜 나는 도덕이 나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을 때조차도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명료한 대답을 제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만약 우주에서 조화와 객관적 목적이 어떤 의미도 없다면, 우리 중의 많은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슬퍼지고 더 가련해진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여섯째,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방법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앞 장에서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한 책무를 가진다는 우리의 직관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주목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50년 아니 100년 후에, 지구상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비용편익 평가를 해서,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고 지루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한다고 가정해 보라. 아마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술로 만들어 낸 장난감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삶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해서 집단 자살하기로 결정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비도덕적인가? 이 자살의 예가 좀 심하다면, 무아경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그들을 영구히 불임으로 만들어 버리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마약을 그들 모두가 복용한다고 가정해 보라 - 그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마약을 복용한다. 어느 경우든 그 결과는 인류의 종말일 것이다. 다시, 나는 묻는다. 이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어떤 것을 했는가? 그들은 어떤 사람의 권리를 침해했는가?

철학자 파인버그(Joel Feinberg)는 선구적인 한 논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싶다. 우리 종의 자살은 통탄할 만하고, 슬퍼할 만하고, 심김을 울리는 비극이겠지만, 그것은 그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실은 반대이겠지만,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을 하는 데 동의할 수 있다면, 그 동의는 여하튼 우리 종이 생물학적으로 생존에 부적합하다는 징후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자살의 통상적인 경우와 같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라. 우리는 때때로 자살이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자살로 인해 해를 입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 삶을 끝내려고 결심한 부모는 고아가 되거나, 부모의 자살을 대할 때의 충격으로 고통스러워할 아이들을 돌볼 우선적인 책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뒤에 남을 아이들이 없을 수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자마자, 역시 죽기로 동의하거나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염려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 또는 그렇게 보인다. 미래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려할 수 없고, 그러므로 정체성을 가질 수도 없다.

종교는 우리에게 미래 세대를 돌보아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제공해 준다. 첫째, 신은 우리에게 종족(race)을 지속시키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종 교적 신앙인들은 미래 세대를 돌보아야 할 두 번째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신은 누가 태어날지를 알고 있고, 그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을 사랑한다. 신에게는 세상의 존재들의 짧은 삶 전체가 선이다. 선한 청지기로서 신을 섬김에 있어, 우리는 지구 전체가 선이 되도록 하는 신에 대한 의무를 진다. 그것은 앞으로 태어날 그리고 신에 의해 이미 사랑받고 있는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건강하게 남겨 두는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신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유신론은 우리가 무신론적 체계에서 가지고 있는 자율성의 어떤 것도 우리로부터 박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러한 여섯 가지 논제에 덧붙여진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가 선이나 약을 선택하는 데 있어 똑같이 자유롭다면 (선과 악의 개념이 무신론적 체계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가정하면), 그때는 여러 가지 점에서 유신론의 세계가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보다 더 낫고 더 만족스럽다고 주장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다. 또한 유신론자는 계시를 통해서 세속주의자가 도달할 수 없는 더 심오한 도덕적 진리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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